2009년 5월 25일 월요일

President 2.0 Alpha

그는 IT식으로 말하면 "대통령 2.0 alpha"였다.

버전을 셀 수도 없을 만큼 오랫동안 써온 "왕정"이라는 소프트웨어를, 국가는 "대통령"이라는 새 이름과 새로운 UI로 포장하여 국민에게 팔았다. 이름과 겉모양이 바뀌고 몇 개의 새 기능이 추가되었지만, 형편 없는 사용성은 여전히 사용자인 국민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대체상품이 없어 그렇게 오랜 세월 억지로 써온 끝에, 마침내 국민은 버전 업그레이드에 참여하게 되었다. 국민은 몇 개의 RC(배포판 후보) 버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대통령 1.x"의 마이너 업그레이드 대신, "대통령 2.0"으로 가는 메이저 업그레이드를 선택했다.

"대통령 2.0"은 단순한 업그레이드가 아니었다. 기반부터 다시 작성한 완전히 새로운 소프트웨어였다. 온갖 버그의 근원인 "왕정"의 레거시 코드를 모두 없앤다고 했다.
너무 많은 권력 리소스를 잡아먹는다는 사용자 피드백에 따라 권력 점유율을 최소화한다고 했다. 정경유착이라는 심각한 시스템 오류의 원인인 권력 누수(leak) 문제도 잡는다고 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축적된 레거시 코드를 한 번의 업그레이드로 제거해버릴 수는 없었다. 권력 리소스 점유율을 지난 버전에 비해 대폭 줄이는 데 성공했지만, 그 결과 "대통령 2.0"이 점유하지 않은 메모리 공간에 온갖 바이러스와 멀웨어(malware)들이 창궐하기도 했다. 또한, 비록 코어 라이브러리의 권력 누수 현상을 잡는 데는 성공했지만, 서브 모듈들의 누수 현상은 여전했다.

사용자들은 격분했다. 온갖 포럼에 "대통령 2.0"을 비난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고사양의 컴퓨터를 가진 자들은 "대통령 2.0"이 불안정하다고 비난했다. 그들은 특히 저사양 컴퓨터를 위한 '리소스 균등화 알고리즘'이 고사양 컴퓨터의 추가 리소스 활용을 제한하는 점을 가장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급진적 성향의 또 다른 사용자 그룹은 "대통령 2.0"이 여전히 "자본주의" 파일 시스템을 채택한 점을 비난했다. 하드를 포맷하더라도, 오픈 소스 운영체계를 위한 "사회주의" 시스템을 적용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었다.

"대통령 2.0"은 아직 알파(alpha) 단계였다. 불안정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1.x에 익숙한 사용자들은 새로운 변화를 싫어했고, 오랜 세월 2.0을 기다려온 사용자들은 알파 버전의 불완전성을 용서할 수 없었다. 어떤 시스템 관리자들은 자신들의 권한을 악용하여 2.0a를 밀어버리고 다시 1.x를 깔겠다고 했다. 사용자들의 반대로 미수에 그쳤지만, 이 사건은 결국 5년 만에 다시 찾아온 새 배포판 후보 선택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국민은,
다운그레이드를 선택했다.

탐욕스런 권력 점유율을 가지고,
저사양 컴퓨터를 무시하고,
권력 누수 현상이 극심하고,
일단 깔면 다시 깔기도 어려운
"대통령 1.x" 버전으로의 회귀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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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a 빌드는 커미터 자신의 손에 의해 삭제되었다. 나는 커미터가 무슨 생각으로 삭제 명령을 내렸는지 알 수 없다. 그는 알파 버전이 가질 수 밖에 없는 불완전성을 스스로 용서할 수 없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동료 커미터들이 더 나은, 전혀 새로운 fork에 contribute 하게 하려는 의도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삭제할 수 밖에 없었을까?

나는 여러 개의 RC 중에서 2.0a 버전을 선택한 수많은 베타 테스터들 중 하나다. 기대가 컸던 만큼 버그를 발견하거나 오작동을 겪을 때마다 실망도 컸다. 남미에서 개발한 전혀 새로운 운영체계 (우분툰지, 우곤지 하는) 얘기를 전해 듣고, 둘을 비교하며 더 큰 실망을 맛보기도 했다. 그러나 2.0의 발전방향은 옳았다. 좋은 OS라면 당연히 저사양 넷북에서도 씽씽 돌아가며, 대형 소프트웨어의 리소스 독점을 막아 사용자를 보호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1.x를 쓰고 있다. 그리고 2.0a 빌드는 터미네이트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머지 않아 2.0b를 보게 될 것이다. 2.1과 2.2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충분한 시간이 지난 뒤에는 3.0을 보게 될 것이다. 이 믿음과 희망이 "대통령 2.0a"가 내게 남긴 위대한 유산이다. 이것이 우리가 절대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되는, ROM-라이터를 빌려다가 우리 머리 속에 임베드해야만 할 위대한 버전 히스토리다.

2009년 5월 21일 목요일

Do I Need Newspapers?

우선 나의 성향을 밝혀야겠다. 나는 신문을 보지 않는다. 아니, 단순히 종이신문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네이버 뉴스 섹션도 보지 않는다. TV도 보지 않는다. 아예 TV가 없다. 내가 신문이나 뉴스를 보는 건 가끔 트위터나 미투데이의 링크를 타고 뉴스 페이지로 간 경우, 그리고 주말에 부모님 집에서 가끔 신문을 뒤적이는 게 전부다. (아 참, 예외적으로 테크밈이 있다. 하루 한 번쯤 접속한다.)

신문의 가치
내가 신문이나 뉴스를 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뉴스의 실시간성을 별로 중요히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이 아프거나, 지인이 상을 당한 일은 한 시라도 빨리 알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하철 9호선 개통 지연, 박영석 에베레스트 등반, KF-16 추락 원인 등의 소식을 내가 매일같이 신경 쓸 필요는 없지 않나. (방금 네이버 메인에 가서 몇 개의 뉴스 제목들을 가져왔다. 링크는 걸지 않는다.) 게다가 정말 흥미롭거나 중요한 소식이라면 점심시간에 친구나 동료들로부터 듣게 된다.

잡지의 가치
잡지는 신문과는 조금 다르다. 실시간성을 포기하는 대신, 정보의 깊이와 주변 맥락을 충실히 전달한다. (볼 만한 잡지라면 적어도 그렇게 하려 애쓴다.) 실제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떠한 일들이 왜 발생하는지 알고 싶다면 신문보다는 잡지가 더 도움이 된다. (다시 잡지와 책을 비교하는 건 오늘은 건너뛰자.) 그렇다고 내가 잡지를 구독하진 않는다. 블로그가 넘쳐나는데 그럴 필요가 뭐가 있겠나? 나는 블로그를 통해 세상을 보고, 블로거들을 통해 세상을 배운다.

그래도 뉴스는 필요하다
내가 직접 뉴스를 소비하지 않음에도, 나는 여전히 뉴스를 필요로 한다. 어디선가 발생한 어떤 사실을 취재하고 전달할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그들이 없이는 뉴스 뿐 아니라 잡지도 블로그도 존재할 수 없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신문이나 방송이 새로운 살 길을 찾기를 바란다. 가뜩이나 좁아진 입지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요즘 자주 들리는 화두 중 하나가 "실시간 웹, the real-time web"이다. 트위터의 급성장이나 전통적 미디어의 쇠락, '마이크로 콘텐트'나 '스낵 컬처'와 같은 맥락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실시간 웹은 지금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웹의 일부일 뿐이다. 그러므로 트위터가 블로그나 구글을 대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이크로 콘텐트가 "Full-sized" 콘텐트를, 텀블러가 위키피디아를 대체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고자 하는 얘기가 뭐였더라? 음...... 이게 전부다. 따로 결론은 없다. 굳이 결론이 필요하다면 "역시 책을 읽자" 정도이려나?

2009년 5월 18일 월요일

XE : eXternal Ecosystem

공식적으로 XE는 eXpress Engine의 약자다. 하지만 XE가 내게 갖는 의미는 eXternal Ecosystem이다. 조금 부연하자면, 네이버 등 포털 외부에 있는 온라인 생태계라는 뜻이다. NHN의 CTO(최고기술책임자)는 이를 "정보 플랫폼" 사업으로 표현한다. 우리 두 사람의 시각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맥락은 대체로 비슷하다. 포털 밖에서도 좋은 콘텐트가 생산되고 유통될 수 있도록 돕는 일인 것이다.

XE는 일종의 프레임웍(framework)이다. 쉽게 말하면 DIY 소프트웨어다. 설치 후 바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각각의 사용자가 자신의 필요와 취향에 맞게 웹사이트를 만들어 써야 한다. HTML이나 PHP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몰라도 XE 사용법만 익히면 "누구나" 웹사이트를 만들 수 있다.

XE는 다양한 사용자 욕구를 걸러내지 않는다. 사용자의 무한한 자유가 XE가 추구하는 가치이고, 무한한 확장성이야말로 XE가 여타 가입형 웹서비스에 비해 갖는 가장 큰 장점이기 때문이다. XE는 그야말로 엄청난 잠재력을 내포하고 있는 강력한 도구다. 하지만 덕분에 누구나 다룰 수 없는, 어려운 도구일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F1 경기용 자동차는 너무나 강력하고 빠르기 때문에 일반인은 제대로 운전할 수 없다. 오히려 제한된 마력(horse-power)을 가진 소형 승용차를 몰 때 더 빨리 코스를 완주할 수 있을 것이다.

XE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짧지 않은 학습기간이 필요하다. XE의 다양한 모듈을 조합해 원하는 기능을 구현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쓰기 편한 인터페이스를 구성하기는 더욱 어렵다. XE가 제공하는 방대한 기능들에 혹해 그것들을 전부 활성화했다가는, 너무나 복잡해 누구도 쓸 수 없는 사이트가 될 테니까.

문제는 상당 수의 XE 사용자들이 그들의 웹사이트에 너무 많은 기능을 붙여놓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어쩌면 "The Less is More"라는 경구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이런 실수를 범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가장 기본적인 인문학 교육조차 받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온갖 기능과 요소를 덕지덕지 붙여놓은 이런 웹사이트는 최소한의 필수 기능을 갖춘 여타 웹사이트보다 보기에도 안 좋고 쓰기에도 불편하다.

XE가 그런 부분까지 책임져야 할까? 내 생각엔 그렇다. XE 사용자들이 더 매력적인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면 XE는 더 이상 대중화되지 못할 것이고, 소수를 위한 장난감이라면 NHN은 XE를 더 이상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직장을 잃을 뿐 아니라, 소중한 삶의 일부를 낭비한 꼴이 된다... 아무튼 이게 요즘 나의 가장 큰 고민이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용자들이 XE를 제대로 쓸 수 있게 도와줄(not 강제할) 수 있을까? 아직은 멀고도 험한 길이라 한숨만 폭폭 나온다.

p.s. 또 하나의 주절주절 포스팅. 요즘 왜 이런 글을 못 참고 써버리고 마는가.

2009년 5월 14일 목요일

Untitled: 2009.5.14

기부가 필요한 곳은 많지만 내가 기부할 수 있는 돈은 한정되어 있다. 수많은 모금함 중 한두 개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게 꽤 어렵다. 각자의 성향이나 생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경우 수혜범위가 넓은 쪽을 선호한다. 예를 들어 "소녀가장 수현이를 도와주세요"보다는 "결식아동 돕기"를 선택하는 거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구체적인 케이스 쪽이 기부금의 투명한 운용면에서도 유리할 뿐더러, 문제의 해결 가능성도 높다. 고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누구를 도울 것인가? 이주노동자? 독거노인? 소녀가장? 장애인? 어려운데다 고통스런 선택이다. 나는 아이들을 택한다. 그들은 아직 스스로를 도울 기회를 가져보지도 못했고, 스스로를 보호할 최소한의 힘마저 부족하니까. 그리고 가장 많은 양의 미래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러나 아직도 선택은 남는다. 교육이냐, 주거냐, 의료냐, 물이냐, 인권이냐의 문제다. 이쯤 되면 '아무러면 어때' 포기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물과 교육 두 개 후보로 압축해본다. 그런데 더 이상은 못하겠다. 언뜻 모든 문제의 근원을 해결할 기회는 교육에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당장 생명의 유지가 필요한 급박한 상황을 생각하면 역시 물인가 싶기도 하다. 결국 하고자 하는 얘기는, 어떠한 문제와 맞닥뜨렸을 때 문제의 근원(핵심)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일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좀 생뚱맞나?

나는 웹 서비스 디자이너다. 아니 집어치우고, 웹 서비스 기획자다. 일을 못하지는 않는다. 아니, 스스로 말하기엔 좀 거시기하지만 일을 꽤 잘하는 편이다. 천재적이라거나, 아주 뛰어나지는 않다. (다른 얘기지만, 그런 사람들이 항상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창의적인 문제 해결에 좋은 능력을 발휘한다. 그러니까, 평소에 열심히 관찰하고 경험한 것들을 모아두었다가, 남들이 미처 생각치 못한 방식으로 문제 해결에 활용할 줄 안다는 얘기다. (얼씨구, 자화자찬이 길어지는구나~) 그러나, 좋은 회사원은 못된다. 때려치우고 재입사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조직구조와 프로세스라는 것들이 싫고, 꾸준히 "퍼포먼스를 내줘야" 하는 것도 싫다. 하기 싫은 일을 시키는 것도 싫고,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막는 것도 싫다. 한 마디로, 내 꼴리는대로 멋대로 하고 싶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장도 아니고 일개 사원이 그렇게 하면 기업이 굴러가겠나? 제 멋대로 하려면 회사를 나가야지. 그래도 나만큼이나 회사생활을 싫어하지만 참고 다니는 아내, 그리고 유기농 음식 먹고 비싼 기저귀를 하루에도 몇 개씩 써대는 딸을 생각하면 당장 그만둘 수도 없다. 2년여 전, 결혼을 2달 앞두고 때려친 때와 비교하면 많이 컸다, 이나무. 아아, 결국 하고자 하는 얘기는, 주 40시간 근무는 내겐 너무 빡씨다는 거다. 아무래도 난 비정규직 체질인가 보다.

아무튼 세상 모든 문제의 근원은 자본주의라고, 나는 다시 한 번 생각한다. 환경문제도, 식량문제도, 한창 귀여운 한살반된 딸아이를 중국인 아주머니에게 맡기고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는 어느 부부의 문제도...... 모두가 자본주의 탓이다. (부시나 MB 같은 못난 "리더"들의 탓도 조금 있다. 젠장.)

2009년 5월 6일 수요일

Index Cards FTW!

예전에도 잠깐 언급한 적이 있지만, 정보 카드는 정말 좋은 도구다! 오늘은, 더 많은 사람들이 정보 카드를 잘 활용하길 원하는 마음으로, 내가 정보 카드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 소개해볼까 한다. (특정 문구회사 광고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정보 카드가 잘 팔린다고 내가 얻게 되는 건 아무 것도 없음을 미리 밝혀둔다.)

정보카드

정보 카드의 선택
여러 문구회사에서 다양한 크기의 정보 카드(=색인 카드)를 내놓고 있지만, 내가 요즘 쓰는 건 88x56(mm) 크기다. 내가 알기론 모닝글로리에서만 나온다. 가장 큰 장점은 휴대성이다. 가장 작은 크기라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 편하다. 명함과 비슷한 크기라 명함집에도 쏙 들어간다. 또 하나의 장점은 작은 크기가 자연스럽게 정보량을 제한한다는 점이다. 정보 카드를 잘 활용하려면 한 장의 카드에 한 개의 토픽/아이디어만 적는 것이 좋은데, 카드가 크면 종이가 아까워서라도 그렇게 쓰게 되지 않는다. 이 88x56 정보 카드를 쓰면서 그 문제가 해결됐다. 세 번째 장점은 책상 위에 더 많은 카드를 늘어놓을 수 있다는 점이다. 즉, 한 눈에 보여지는 정보량이 늘어난다는 건데, 자세한 얘기는 아래쪽에서 다시 하자.

정보 카드의 휴대
위의 사진에서는 명함집에 넣은 연출샷을 찍어봤지만, 대개 그냥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다닌다. (명함집에도 명함과 함께 몇 장을 넣어가지고 다닌다. 명함이 떨어졌을 때 급히 이름과 연락처만 적어서 주면 좋을 듯.) 대여섯 장을 바지 뒷주머니에 넣으면 된다. 함께 찍은 휴대용 볼펜은 일제다. 3천원이었나? 정보 카드와 찰떡궁합이다. 내가 써본 다른 휴대용 미니 볼펜들 중 잡는 느낌이 가장 편하다. (뚜껑을 뽑아 뒷쪽에 꽂으면 길어져서 보기보다 잡고 쓰기가 좋다.) 품질도 꽤 좋아서, 글씨를 쓰기 시작할 때 실패하는 법 없이 잉크가 잘 흘러나온다.

정보 카드의 활용, 장점
컴퓨터 앞에 있지 않을 때--특히 걸을 때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보 카드에 적곤 한다. 업무 관련 아이디어도 있고, 단순히 할 일이나 사야할 물건도 있다. 휴대폰의 메모 기능도 있지만, 구세대라 그런지 텐키 입력보다는 펜과 종이가 편하다. (물론 쿼티 키보드가 있다면 펜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또 간단한 다이어그램이나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렇게 무언가를 적은 정보 카드는 그 내용을 컴퓨터에 옮기거나, 완료했거나, 다시 봤을 때 쓸모 없는 내용이었다면 휴지통에 던져버린다. 이것이 정보 카드의 미덕이다. 물리적으로 버리게 된다는 것. 쌓이고 밀리는 일이 없다는 것.

하지만 정보 카드의 진정한 가치는 협업, 아이디어의 발산과 정리 쪽에서 빛을 발한다. 나는 마인드맵핑 소프트웨어--그 중에서도 Freemind를 즐겨 쓰는데, 정보 카드는 마인드맵핑에 가장 적합한 아날로그 도구다. 노드의 추가나 제거, 그룹핑이나 재배치가 (쉽게 말해, 카드를 더하거나 빼거나 옮기거나 한데 묶는 것) 이렇게 간편한 건 정보 카드 뿐이다. 혼자 또는 여럿이서 브레인스토밍을 하거나, 정보를 선별하고 그룹핑 할 때, 정보 카드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이런 결과물은 마인드맵으로 옮겨두고 버린다.

마무리
정보 카드가 만능은 아니다. 때에 따라 큼지막한 노트 패드나 코넬 노트가 더 효과적인 도구가 된다. 하지만 위에 열거한 여러 가지 장점들 덕분에, 나의 기본 메모 도구는 88x56 정보 카드다. 몇 묶음 사서 써보시라. 정가는 800원이지만 600원 대에 살 수 있다. 내 장담컨데, 내게 감사하게 될 거다. ㅎㅎ